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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다자주의’를 강조한 것을 놓고 한미동맹을 중시하되 ‘미국 우선주의’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갈등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불안이 가중되고, 한·미 관세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미국의 정치·외교·경제 노선을 일관되게 지지하긴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여전히 2억8000만 명의 인구가 극심한 기아 상태에 놓여 있고, 세계 곳곳의 무력 분쟁 등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할) 방법은 단 하나, ‘더 많은 민주주의’”라고 역설했다. 이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다자주의적 협력의 길, 민주 대한민국이 앞서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의 접견에서도 다자주의를 거듭 역설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국제사회가 분열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유엔에서 지혜롭고 균형 잡힌 목소리를 내면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다자주의 협력 체계의 중심인 유엔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을 평가한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다자주의를 거론한 것은 미국 우선주의와 세계 자유무역 질서의 충돌, 안보·경제 분야에서 우리 국익을 위협받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동맹과는 별개로 미국의 고립주의에 끌려가선 최선의 국익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렸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대만 해협을 둘러싼 미·중의 영토 분쟁에 한국이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이 대통령은 최근 외신 인터뷰 등을 통해서도 관세 협상과 관련한 미국의 불합리한 압박을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관세 규칙은) 공정하고 상호적이어야 한다. 규칙을 준수한 국가들의 공장은 모두 약탈당했다”고 했다. 미국이 타국으로부터 ‘약탈’을 당한 만큼 고율의 관세 부과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김영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견제를 위한 중국의 다자주의가 ‘파워 게임’에 가깝다면, 전후(戰後) 글로벌 강국의 지원으로 성장한 한국은 다자주의를 견지할 수밖에 없는 외교적 지형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정부는 유엔총회 기간에도 미 정부 주요 인사들과 접촉해 설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취한 입장이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합리적 입장이라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이라도 접점을 찾으면 관세협상 타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