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리한 수사와 가쉽성 보도 그리고 지켜지지 못한 한 사람의 인권
국승한기자
승인
2023.12.28 18:05 | 최종 수정 2024.01.04 17:05
의견
0
배우 이선균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 10월 마약관련 혐의로 수사를 받기 시작한 지 69일만에 벌어진 비극적인 일이다.
강남의 한 유흥업소 실장이라는 여성과 마약을 투약했다는 혐의로 고 이선균씨는 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간이 시약검사'와 '정밀검사' 2번의 검사에도 이선균씨가 마약을 투약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경찰은 구속된 유흥업소 실장이라는 사람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계속 진행했다.
이선균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일관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언론은 온갖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다. 유튜버와 SNS까지 포함하면 그런 '카더라'식의 컨텐츠 숫자는 헤아릴 엄두가 나지않는 수준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선균씨의 인권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니 철저히 유린당했다.
마약 투약을 했다는 혐의가 있어 수사를 받는 것이지 아직 기소가 되지 않았는데도 경찰은 3번이나 공개 출두를 시켰고 언론은 그 과정을 생중계하며 가쉽성 기사를 쏟아냈다. 수사 내용이 언론에 흘러들어갔고, 여과없이 그대로 보도됐다.
특히 11월 24일 지상파 공영방송사는 이선균씨와 함께 마약 투약 혐의로 조사를 받는 유흥업소 실장 A 씨와의 대화 녹취록을 보도했다. 해당 내용에는 마약 투약 의혹과는 관련이 없는 사적 대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있어서는 안될 일 이었다.
검·경의 무리한 수사와 언론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보도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수사기관과 언론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가? 최소한 양심의 가책을 받고 다음번엔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해선 안되는 것 아닌가?
심지어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피의사실을 공표해선 안된다는 법까지 있다.
형법 제126조에 규정된 '피의사실 공표죄'는 검찰·경찰·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한 경우 성립하는 죄이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규정으로, 아직 입증되지 않은 피의사실 공표로 부당한 인권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는 국민이 있어야 형성되는 것이고, 수사관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다. 누구보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두번다시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 이선균씨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한 대사처럼 "이제 편안함에 이르렀기를" 기도한다.
저작권자 ⓒ 인사이드K,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