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3%포인트 낮은 2.7%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2000년 이후 닷컴버블 등 네 번의 위기 상황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계 경제에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관세전쟁의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전날 관세를 90일간 115%포인트씩 낮추는 ‘휴전’에 합의했지만, 과거보다 관세가 높은 수준에서 균형점을 찾을 가능성이 큰 만큼 투자 불확실성, 공급망 재편 등에 따라 세계 경제의 성장 하방압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KIEP는 13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25년 세계경제 전망(업데이트)’을 발표했다. KIEP는 올해 세계경제가 2.7% 성장률을 기록해 지난해(3.2%)보다 0.5%포인트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트럼프 정부가 촉발한 관세정책으로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고 KIEP는 전망했다. 2.7%의 성장률은 2000년 이후 닷컴 버블 붕괴(2001년),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코로나19(2020년)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이다.
주요국별로 보면 미국의 올해 성장률은 1.3%로 전망돼 종전 대비 0.8%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관세 부과로 물가가 상승 압력을 받는 가운데 세계교역 축소 등으로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투자 지연이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및 실업률 상승 우려, 재정지출 삭감에 대한 상하원의 입장차로 통화·재정정책은 제약받고 있다고 KIEP는 분석했다.
중국의 경우 소비재 이구환신(낡은 제품 새 것으로 교체 지원) 등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무역전쟁, 부동산 시장 침체 등에 따라 올해 성장률은 4.1%에 그칠 것이라고 KIEP는 내다봤다. 이는 중국이 지난 3월 양회에서 제시한 목표치(5% 내외)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KIEP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추가로 끌어내릴 수 있는 위험요인도 많다고 분석했다. 우선 관세 및 통상마찰이 격화할 경우 세계 교역이 둔화하고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업들의 불확실성 증대로 설비 투자 및 글로벌 밸류체인 재편 투자가 지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투자 위축이 나타나고, 교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와 기업에 타격이 클 것이란 분석이다. 또 관세로 수입물가 상승, 공급망 차질 등으로 글로벌 물가가 예상보다 높아질 경우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를 주저하는 등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KIEP는 전망했다.
KIEP는 아울러 과거 저금리 시기를 거치며 부채가 확대된 상황에서 자산 가격이 급락하는 ‘역자산효과’가 발생하면, 소비 둔화와 투자 위축 현상이 나타나 경기 하강 압력이 증폭될 수 있다고 밝혔다.
KIEP는 미국이 대중국 관세를 30%로, 중국은 대미 관세를 10%로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해 내년까지 성장률이 예전 수준으로 복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