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현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 / 사진=한국거래소
최근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시장의 상장 기준을 비공식적으로 강화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거래소 측은 ‘좀비기업 퇴출 정책’과 연계해 IPO(기업공개) 심사 기준을 높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업계의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상장 문턱을 높여 시장의 질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는 이해되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 졸속 행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 ‘밸류업’이라는 명분, 시장의 혼란이라는 현실
한국거래소가 내세우는 논리는 단순합니다. 부실 기업들의 무분별한 상장이 증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IPO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엔데믹 이후 경기 침체에도 IPO 기업 수는 증가했으며, 일부 기업은 상장 직후 주가가 급락하는 등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상장과 퇴출을 동시에 조정하여 증시의 질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방향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그 방식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기존에 명확하게 공지된 상장 기준을 신뢰하고 IPO를 준비해 온 기업들에게 갑작스럽게 새로운 기준(예: 300억 원 매출)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IPO는 수년간의 준비가 필요한 중요한 기업 전략인데, 거래소가 사전 공지 없이 돌연 기준을 변경한 것은 기업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를 초래한다.
2. 예심을 준비한 기업들의 ‘생존권 침해’
특히, 이미 상장 예비심사를 준비하고 있던 기업들은 기습적인 기준 변경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예심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프리IPO 투자(상장 전 투자)까지 마친 기업들이, 강화된 심사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심을 철회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조정이 아니라 기업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IPO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은 법적·재무적 준비뿐만 아니라 투자 유치와 내부 경영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상장하려면 매출 30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암묵적 기준이 적용된다면, 이미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 기업들은 큰 손실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프리IPO 투자자들 역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IPO를 전제로 자금을 투입하는데, 거래소의 불투명한 기준 변경으로 인해 투자금이 장기간 묶이거나 회수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벤처캐피털(VC)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신생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3. 명문화되지 않은 ‘가이드라인’은 시장의 신뢰를 해친다
거래소는 공식적으로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내부적으로 매출 300억 원 이상의 기업만 상장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공식적인 규정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반복되면 시장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IPO 심사 기준은 명확한 규칙과 기준을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례처럼 거래소가 내부적으로 기준을 변경하고, 이를 사전 공지 없이 적용한다면 기업과 투자자들은 거래소의 정책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이는 한국 증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 자본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4. 필요한 것은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
거래소가 코스닥 시장의 질적 향상을 위해 IPO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공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갑작스럽게 기준을 높이면, 이미 IPO를 준비 중인 기업들만 피해를 보는 불공정한 상황이 발생한다.
만약 거래소가 IPO 심사 기준을 조정하려 한다면, 최소한의 유예 기간을 두고 새로운 기준을 명확하게 공표해야 한다. 또한, 예심을 진행 중이던 기업들에게는 기존 기준을 적용하는 ‘소급 적용 금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시장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이다.
5, 정책 변경은 투명하게, 시장 참여자들과 소통해야
한국거래소의 이번 조치는 시장 질적 향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책 변경이 졸속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기업들과 투자자들의 반발은 커질 수밖에 없다.
거래소가 ‘공정한 심사’라는 원칙을 지키려 한다면, 그 과정 역시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IPO 기준 강화가 필요하다면, 시장 참여자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예측 가능하고 형평성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향후 한국 자본 시장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정책 변경이 아니라 합리적인 소통과 공정한 제도 운영이 필수적이다. 거래소는 ‘상장 문턱 강화’라는 명분이 정당할지라도, 그 실행 방식이 졸속적이라면 오히려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