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관세 폭탄'을 공약으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세계 무역 질서가 극심한 불확실성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관세 전쟁의 포문을 열고, 중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이에 맞불을 놔 '세계 관세 대전'이 벌어지면 세계 무역 위축으로 한국은 최악에 60조원대에 달하는 수출이 감소하는 직접적 경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 새 미국 정부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커진 한국의 대미 무역 수지 흑자를 빌미 삼아 한국을 특정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압력을 비롯한 통상 압력을 가해 올 가능성도 거론돼 정부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춘 대응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후 공약대로 관세를 인상한다면 세계 무역 판도에 즉각적 변화가 초래된다.
그는 중국산엔 6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나머지 국가 수입 상품에도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현재도 높은 대중 관세 장벽을 더욱 높이고, EU·캐나다·한국 등 핵심 동맹에까지 보편 관세를 매겨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생각이다.
무차별 '관세 난타전' 양상이 벌어지고 세계적으로 자국 우선주의 통상 정책이 강화되면 수출 주도 한국 경제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접 관세 부과로 대미 수출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관세 전쟁으로 무역에 타격을 받은 중국 등 제3 국가로 수출도 감소하는 피해를 볼 수 있다.
미국이 중국산 IT 품목에 고율 관세를 매겨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애플 등 글로벌 기업에 영향을 주면 중국 현지로 반도체 등 중간재를 공급하는 한국 수출에도 타격을 주는 식이다.
구체적인 한국의 피해 전망도 나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달 31일 보고서에서 미국이 양자 FTA가 있는 한국을 포함해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국이 맞대응하는 최악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면 한국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감소도 0.29%∼0.69%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관세 전쟁'으로 인한 무역 위축 외에도 미중 정면충돌 우려가 커진다는 점도 한국 경제에는 또 하나의 불안 요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가드레일'을 통한 중국과의 '경쟁 관리·충돌 방지' 기조를 중시했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경제 안보에 직결되는 첨단 전략 산업에 초점을 맞춰 중국을 배제하되 일반 경제 부문에서는 상호 이익이 되는 중국과의 협력 틀을 유지하는 이른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차원의 정교한 접근법을 취했다는 평가다.
반면 트럼프 진영은 공급망 전반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을 더욱 노골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국의 1∼2위 교역국은 나란히 중국, 미국이다. 관리되지 않은 미국과 중국 간의 전면적인 충돌은 두 나라와의 교역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큰 불확실성을 드리우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산업 전반에 걸친 미중 디커플링이 심화할 때 한국 경제의 후생이 최대 1.37%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다.
정부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미국발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가운데 여러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통상 리스크에 신속하게 대응해 우리 경제 안정과 기업들의 이익을 지켜내겠다는 방침이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열린 글로벌 통상전략회의에서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미 대선 이후에도 다양한 고위급 채널을 통해 산업·통상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원활한 경영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과 같이 대외 개방도가 높은 국가의 경우 다자 통상 질서 회복과 안정적인 통상환경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미들파워 이코노미'인 중견 국가들과 연대와 공조를 통해 공급망의 블록화가 전 산업에 걸쳐 진행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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